VOLUME II · UNIT III · LESSON 03

원 간섭기 고려 사회의 변동과 개혁

100년 간 몽골(원)의 간섭 아래 놓인 고려. 권문세족이 토지를 독점하고 신진사대부가 등장한다. 공민왕의 개혁,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그리고 470년 고려의 마지막 페이지.

LEARNING GOAL성취기준
9역10-03 원 간섭기 고려 사회의 변동을 살펴보고, 공민왕의 개혁신진사대부의 등장을 이해한다.
SECTION · 01

원의 간섭 — 80년의 굴종과 변화

1270년 개경 환도 후 고려는 원의 간섭을 받게 된다. 몽골과의 친선을 표방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사위 나라(부마국) 신세 — 약 80년 간 이어진 굴종의 시기.

고려 후기 영토
고려 후기 영토 (1389)북쪽에 쌍성총관부·동녕부·탐라총관부가 직할령으로 — 원이 직접 통치.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몽골 위왕의 딸 노국대장공주와 결혼한 공민왕 — 그러나 원에 맞서다.

⛓ 원 간섭의 모습

1270~1280
왕실의 격하 — "부마국"
왕의 호칭이 '폐하'에서 '전하'로, '태자'가 '세자'로 격하. 시호도 '조·종' 대신 '충(忠)'자 사용(충렬왕·충선왕·충숙왕·충혜왕·충목왕·충정왕). 왕은 원의 공주와 결혼 — 부마국.
1280~
관제·영토의 축소
2성 6부 → 첨의부·4사로 격하. 중서문하성·상서성·중추원 폐지. 북쪽에 쌍성총관부(함경도), 동녕부(서경), 탐라총관부(제주도) 설치 — 직할령.
1281, 1283
두 차례 일본 원정의 부담
원의 일본 원정에 동원 — 배·식량·군사를 부담. 두 차례 모두 태풍(가미카제)에 의해 실패했지만, 고려는 막대한 손실. 백성의 고통.
전반기
공녀·환관·매
원에 매년 공녀(여성)·환관·매·인삼·금·은을 바침. 기황후처럼 원의 황후가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비참한 처지.
14세기
권문세족의 등장
원의 힘을 등에 업은 새로운 지배층 — 권문세족. 친원파, 통역관·환관·내시 출신, 무신 정권 후예 등 다양한 출신. 거대한 농장(불법 토지)과 노비 보유.
OLD ARISTOCRACY

권문세족 (친원파·기득권)

14세기 새 지배층. 다음 특징:

  • 원의 힘을 등에 업음
  • 대농장과 많은 노비 보유
  • 음서로 자녀를 관직에 등용
  • 불법 토지 약탈로 양민을 노비화
  • 대표 — 이인임·기철·홍자번 등
NEW SCHOLARS

신진사대부 (반원·개혁파)

14세기 후반 등장하는 새 정치 세력:

  • 과거로 관직 진출
  • 중소 지주 출신
  • 성리학을 정치 이념으로
  • 권문세족 비판·토지 개혁 주장
  • 대표 — 정몽주·이색·정도전·권근
SECTION · 02

공민왕의 개혁 — 자주성의 마지막 불꽃

14세기 중반, 원이 약해지기 시작한다. 그 틈을 노린 공민왕(재위 1351~1374)의 반원 자주 개혁 — 신진사대부와 손잡고 권문세족·친원파를 제거하려는 거대한 시도였다.

공민왕 초상
공민왕 (재위 1351~1374)원 황실에서 자랐지만 즉위 후 반원 자주를 결심.
정몽주
정몽주 (1337~1392)신진사대부의 중심 — 끝까지 고려에 충성하다 죽임당함.
노국대장공주
노국대장공주 (1325~1365)몽골 위왕의 딸. 공민왕의 반원 개혁을 함께 — 사망 후 공민왕 무너지다.

👑 공민왕의 개혁 — 4가지 핵심

REFORM · 01

친원파 숙청

1356년 기철 등 친원파 권문세족 처형. 기황후의 오빠를 죽이는 결단 — 사실상의 반원 선언.

REFORM · 02

쌍성총관부 회복

1356년 이자춘(이성계의 아버지)의 도움으로 함경도의 쌍성총관부 공격 → 회복. 잃었던 영토 일부를 되찾음.

REFORM · 03

관제·풍속 복원

원 간섭으로 격하된 관제(2성 6부) 복원. 몽골식 변발·호복 폐지. 몽골식 풍습 청산.

REFORM · 04

토지·노비 개혁

1366년 신돈을 등용. 전민변정도감 설치 → 권문세족의 불법 토지·노비를 양민으로 되돌림. 권문세족의 거센 반발.

DEEP DIVE · 공민왕 개혁의 실패

한 사람이 짊어진 너무 큰 짐

공민왕의 개혁은 한국사에서 가장 야심찬 시도 중 하나였다. 그러나 약 23년의 통치 끝에 끝내 실패했다. 이유는 복합적이다.

노국대장공주의 사망(1365) — 공민왕은 자신의 개혁을 함께 지지해주던 부인의 죽음 이후 정신적으로 무너졌다. 노국대장공주는 몽골 출신이지만 공민왕의 반원 개혁을 적극 지지한 동지였다.
신돈의 등용과 몰락 — 천출 승려 신돈을 등용해 토지 개혁을 추진했지만, 신돈이 폭주하다 1371년 처형. 개혁의 핵심 동력 상실.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 — 1359년·1361년 홍건적이 두 차례 침입(개경 함락). 14세기 후반 왜구가 해안을 휩쓸어 — 국력의 소모.
1374년 공민왕 시해 — 측근 환관에게 살해당함. 23년의 개혁이 한순간에.

"한 사람의 군주가 시대의 흐름을 모두 짊어지려 할 때, 그가 쓰러지면 모든 것이 함께 쓰러진다. 공민왕의 비극이 바로 그것이다." — 공민왕 개혁에 대한 사학계의 평
SECTION · 03

위화도 회군 — 470년 고려의 마지막

공민왕 사후 우왕·창왕·공양왕의 시대. 신진사대부와 권문세족, 그리고 신흥 무인 이성계가 마지막 패권을 다툰다. 1388년 위화도 회군이 한반도 역사를 바꿔놓았다.

최영 장군
최영 장군권문세족이지만 청렴한 무장.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 요동 정벌 주장.
이성계
이성계 (1335~1408)함경도의 신흥 무인. 위화도 회군으로 권력 장악, 1392년 조선 건국.
정몽주
정몽주의 최후이성계 편에 서지 않고 끝까지 고려에 충성 — 1392년 선죽교에서 이방원에게 살해.

📜 1388~1392 — 고려의 마지막 4년

1388
명의 철령위 요구 → 요동 정벌
명이 옛 쌍성총관부 자리에 '철령위'를 설치하려 함. 우왕과 최영이 분노 — 요동 정벌 결정. 이성계는 반대했지만 따라 출진.
1388.5
위화도 회군 — 정변
이성계가 압록강 하구 위화도까지 진군했으나 4가지 이유로 회군 요청 → 거부당함 → 군사를 돌려 개경 점령. 최영 처형, 우왕 폐위. 사실상의 쿠데타.
1388~1391
신진사대부의 분열
개혁의 방향에서 갈라짐. 온건파(정몽주·이색)는 고려 안에서의 개혁 주장, 급진파(정도전·조준)는 새 왕조 건설 주장. 이성계는 급진파 편.
1391
과전법 — 토지 개혁
정도전·조준이 주도한 토지 개혁. 권문세족의 거대 농장을 몰수하고 신진사대부와 군인에게 분배 — 새 왕조의 경제적 토대 마련.
1392.4
정몽주 살해 — 선죽교
정몽주가 마지막 저항. 이방원(이성계의 아들)이 선죽교에서 살해.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도..." (단심가).
1392.7
고려 멸망 · 조선 건국
공양왕이 이성계에게 양위. 1392년 7월 17일, 이성계가 즉위 — 조선 건국. 470년 고려가 막을 내림.
SOURCE · 이성계의 4불가론
위화도 회군 (1388)

"신(이성계)이 명을 받들어 출정하였으나, 4가지의 옳지 않음을 보았습니다. 첫째,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스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둘째, 여름 농사철에 군사를 일으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셋째, 거국적으로 원정에 나서면 왜구가 빈틈을 타고 들어올 것이니 옳지 않습니다. 넷째, 장마철이라 활 시위가 풀어지고 전염병이 돌 것이니 옳지 않습니다. 부디 군사를 돌려주십시오."

— 이성계가 우왕에게 보낸 글
SECTION · 04

생각해 보기 —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은 정당했을까?

5가지 질문에 답하고, 종합 결과를 확인. 정답은 없지만 균형 잡힌 시각을 길러보자.

📊 위화도 회군 5가지 관점

각 질문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선택. 5문항을 모두 답하면 종합 평가가 나타난다.

Q1. 작은 나라가 큰 나라(명)에 맞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Q2. 부하 장수가 왕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은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Q3. 결과가 좋다면(조선 500년 안정) 정변(쿠데타)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Q4. 부패하고 무능한 왕은 교체될 수 있다.
Q5. 정몽주처럼 무너지는 나라에 끝까지 충성한 것은 아름답다.
SECTION · 05

한 줄로 정리하면

핵심 정리

  • 1270년 개경 환도 후 약 80년의 원 간섭기 — 왕실 격하('충'자 시호), 쌍성·동녕·탐라총관부 직할, 공녀·환관·일본 원정 부담, 권문세족 등장.
  • 몽골풍·고려양으로 양방향 문화 교류도 활발 — 변발·호복·소주·만두·연지 vs 두루마기·고려청자·인삼.
  • 공민왕(1351~1374)의 4대 개혁: 친원파 숙청(기철 처형) · 쌍성총관부 회복(이자춘) · 관제 복원 · 전민변정도감(신돈, 토지·노비 개혁).
  • 공민왕 시해(1374) 후 신진사대부와 신흥 무인이 결합. 1388년 위화도 회군(이성계 4불가론)으로 정변.
  • 1391년 과전법(토지 개혁) → 1392년 4월 정몽주 살해(선죽교) → 1392년 7월 17일 이성계 즉위, 조선 건국. 470년 고려 멸망.